기억의 저편 by 영담


기억의 저편



가끔 내 인생을 뒤돌아볼 때가 있다. 그동안 겪었던 많은 일들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특히 나이 60 넘어 새로 시작한 삶은 그동안의 삶과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이었다. 그 삶도 이미 1년이 지났다. 그 삶에 내 몸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내 인생을 세 단계로 나눈다면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태어난 날로부터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의 삶,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그 가정 안에서 나의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하던 삶, 그리고 내가 뿌린 씨앗이 쑥쑥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자기들 삶을 찾아 떠난 지금 이 순간부터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무척 궁금하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내 인생의 마지막 단계도 황홀히 저물어갈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또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중에는 즐거웠던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다. 슬픈 일도, 괴로운 일도 있었다. 나와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 중에는 웃으면서 헤어졌던 사람도 있었고, 서로 얼굴 붉히며 헤어졌던 사람도 있었다. 얼굴 붉히며 헤어졌던 일들도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내 탓인 듯 하여 부끄러워진다. 이러한 일들과 사람들은 물론 내 기억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종종 나와 관련해서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말을 내가 했다고 질타한 적이 있다. 나는 전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는데 내가 그렇게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어야 할까? 물론 몇몇 알코올 중독자들은 술을 과하게 마신 후 기억의 필름이 끊길 때가 있다고 한다. 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의 일은 기억이 나는데 어느 순간부터의 일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얼굴에 상처가 나 있는데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른다고 한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서 그런지 그런 일을 경험한 적이 없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자기를 모르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사실 많이 당황했다. 나는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 사람은 나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 기억의 귀퉁이에서 그 사람이 튀어나왔다. 무척 계면쩍었다. 그 사람의 기억 속에는 내가 남아 있었는데, 내 기억 속에는 그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그 사람의 기억 속에 내가 나쁜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누가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마주치고 지나간 사람의 얼굴을 모두 기억할 수 있을까? 이렇듯 기억의 저편에는 자기가 인식하고 있지 않은 세계가 존재한다. 자기 기억의 저편에 있는 자기 모습은 자기 자신이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눈에 비쳐진 모습이다. 우리는 그 모습을 염두에 두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

내 기억의 저편에는 내가 미쳐 인식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가 있다. 그곳의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 흉측한 몰골로 보이지 않도록 신경 쓰며 살아가야겠다.


(2017.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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